북한을 알아보자 -4- 한국전쟁 발발 2편.
북한 군을 부산에서 부터 밀어낸 후
드디어 서울을 되찾은 남측은
한가지 중요한 지점에 도착하게 됩니다.
과연 38선을 넘어서 더 진격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둬야 하는가
38선은 6·25 전쟁 이전에도 남한과 북한을 나누는 경계로 사용됐기 때문에
양측 모두에게 매우 민감한 군사적·정치적 상징이었습니다.
나아가 38선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군사작전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넘어,
전쟁의 목적이 북한군 격퇴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가 통일되게 되면
중국과 당시 소련에게는
그들의 영토 일부 지역이
미국군, 유엔군과
직접적으로
맞닿게 되는 것을 의미했지요.
즉 중국군과 당시 소련군이 움직일 수 도 있게 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북한군을 완전히 수복시키지 않는다면
병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공격을 시도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남측이 승기를 잡게 되자
미국내 지휘부에서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고
더 진격하자 파 와 여기서 멈추자 파로 나뉘게 됩니다.
더 진격하자 파, 북한을 자유롭게
더글러스 맥아더 — 유엔군 총사령관
“I intend to destroy and not to drive back the North Korean forces.”
“나는 북한군을 단순히 격퇴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할 생각이다.”
오마 브래들리 — 합동참모본부 의장
“MacArthur should not be restrained at the 38th parallel.”
“맥아더가 38선에서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존 앨리슨 — 국무부 동북아시아 담당 책임자
“There will be no permanent peace and stability in Korea as long as the artificial division at the 38th parallel continues.”
“38선이라는 인위적인 분단이 계속되는 한 한국에 영구적인 평화와 안정은 없을 것이다.”
vs
진격을 멈추자. 이대로 나눠야 한다.
해리 S. 트루먼 — 미국 대통령
“to prevent a third world war”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서.”
폴 니츠 —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the risk of a major conflict with the USSR or Communist China”
“소련 또는 공산주의 중국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될 위험.”
조지 F. 케넌 — 국무부 정책기획 담당 외교관
“It might be that we would have to permit air operations, though no ground-force occupation, north of that line…”
“어쩌면 우리는 그 선 (38선) 북에서 공중작전은 허용하되, 지상군이 점령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아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승기를 잡은 남측은
23~25일 서울시내에서 격전을 벌이게 되고
27일에 중앙청에는 다시 태극기가 걸립니다.
그리고 이날
모든것을 바꿀 수도 있었던
주요 결정이 미국으로 부터 전해집니다.
네, 38선 넘어 이북으로 진격은 반대하던
트루먼 대통령이
북한군을 격멸하고자 하는
국방장관 조지 마셜이 올린 지침을
승인하게 됩니다.
물론 3차 대전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에
조건부 승인이었지만요.
당시 지침의 요약
북진 허용
중국·소련의 개입 여부 확인
중국·소련 영토 공격 금지
북한 점령은 별도 판단
맥아더는 이후 후속 작전계획 제출해야 하고
승인 받아야 함.
이후
서울에 남은 잔존병력까지 완벽히 정리하고
28일 남측은 서울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맥아더 장군은 마셜 국방장관으로 부터
반세기가 훌쩍 넘은 아직까지도
인용되게 되는 전문을 받게 되지요.
We want you to feel unhampered tactically and strategically to proceed north of 38th parallel.
우리는 당신이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제약받지 않고 38선 이북으로 진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진격합니다.
10월 1일
남측군이 먼저 38선을 넘어 진격합니다.
미군과 유엔군의 본격적인 진격은
유엔총회가 통일한국 수립을 위한 조치를 지지한 날인
10월7일부터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0월 8일
중국도 움직입니다.
동북 국경 방어군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 개편 합니다.
병력의 구성을 바꾸었다는 것은
참전준비를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움직임은
단순
보여주기식으로도 해석 또한 가능했지요.
중국 역시
38선 이후 부터는
아무래도 가만히 넋놓고 보고 있을 수 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10월 15일
맥아더 는 트루먼 대통령과 웨이크 섬의 회담에서
중국의 대규모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보고 합니다.
그리고 10월 19일
계속 진격하던 남측은
평양마저 점령하기에 이르죠.
그리고 같은날
평양 점령 소식을 들은 중국이 결국 움직입니다.
국경에서 대기하던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진입합니다.
10월 25일
유엔군과 중국군이 첫 대규모 전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1월 1일
소련 역시 참전합니다.
소련의 MiG-15 전투기가 유엔군 항공기와 교전하게 됩니다.
안그래도 수적열세에 고전하던 남측은
11월 10일 중국의 대규모 병력이 추가 투입되면서
북측에게 승기를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전황은 급격하게 기울게 되지요.
추위
시작부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전투를 거듭 부산까지 밀려 났지만
결국은 불리한 전황을 뒤집은 남측.
그들에게 전투 그 자체는 계속 진행할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1월 말에 이미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기도 하는
장진호의 추위는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악재였을 것입니다.
총기 윤활유가 얼거나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고, 차량과 무전기 배터리도 추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부상병 치료와 혈액·의약품 관리도 어려워졌습니다.
동상으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투 불능이 된 병력도 많았습니다.
| 손실 항목 | 🇺🇸 유엔군 측 | VS | 🇨🇳 중국군 측 |
|---|---|---|---|
| 투입 병력 | 약 30,000명 | VS | 약 120,000명 |
| 전사·사망 | 약 700 명 | VS | 약 20,000~30,000명 추정 |
| 부상 | 약 3500 명 | VS | 수천~수만 명 추정 |
| 실종·포로 | 약 200 명 | VS | 정확한 집계 불확실 |
| 혹한 등 비전투 손실 | 해병대 기준 7,313명 | VS | 제9병단 기준 30,732명 |
| 전체 손실 | 집계 기준 상이 | VS | 제9병단 기준 52,098명 |
투입 병력이 4개 이상 차이남에도 중국군에게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힌 남측이 확인 됩니다.
앞서 말한대로 전투 자체는 할만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밑의
혹한 등 비전투손실이
전투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위는 그들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1월인데
매일 매일 더 추워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북진을 계속해 나아가던 그들에게
방향을 돌려야할 이유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12월 15일
유엔군이 북한에서 철수하고 남쪽으로 전선을 이동
이를 흥남철수작전 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흥남은 항구였기 때문에
흥남항에서 배를 이용해 병력과 피난민을 남쪽으로 이동시킵니다.
기세를 빼앗겼기 때문일까요?
1951 년 01 월 04 일
북측에게 다시 서울을 빼앗기게 됩니다.
서울 만큼은 빼앗길 수 없던 남측은 교전에 교전을 거듭
1951 년 03월 15일
다시 서울을 되찾고
그렇게 전쟁은 교착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남과 북으로 완전히 갈라지게 되는
휴전회담
이 1951년 07월 10일에 시작됩니다.
회담 기간: 1951년 7월 10일 ~ 1953년 7월 27일
긴시간 동안 서로 의견을 조율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전투가 중단됐지만
평화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법적으로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게 되고
휴전국가
로 남게 되지요.
자칫하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일어났지만 조기에 마무리 된 것이라 해도 될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저 모든 혼란이
단 한명
김일성 이라는 인간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수많은 미국군과 유엔참전국들의 젊은이들이 희생 당했고
70 년이 지난 지금도
한때는 하나였던 한반도는 여전히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저
그 당시 희생한 미국군과 유엔참전국의
군인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당신들 덕분에 지금의 남한이 있을 수 있다고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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